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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웅

  • 면담자 : 양라윤

구술자소개

  • 구술자 : 윤승웅
  • 구술일자 / 장소 : 2010년 11월 13일/광주 구술자의 자택
  • 구술시간 : 1시간 46분 36초

구술아카이브 > 4.19혁명 > 전남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내용 요약

구술자 윤승웅은 1942년생으로 전라남도 보성군 회천면 동율리에서 태어났다. 구술자는 아버지가 목사였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했었고, 고등학교도 미션 계통인 광주숭일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당시 구술자는 숭일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었으며, 교내 예배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1960년 3‧15 부정선거와 자유당의 부패, 마산 시위로 정국이 혼란한 상황에서 당시 정세를 주시하고 있던 구술자는 김주열 시신이 실린 기사를 보고 충격을 받고 동년배들과 시위를 모의하게 된다. 
4월 16일 숭일고 학생들 6명(윤승웅, 김귤근, 최영길, 김소현, 서동룡, 박태성)이 학교 후문 할머니빵집에서 만나 1차로 시위를 모의하게 된다. 이들은 학생들을 시위에 가담하게 하기 위해서 3학년 각 반에서 3명의 대표를 선출하고, 이후 다른 학교와 연대 및 동향을 살핀 후 다시 모여 구체적인 시위를 계획하기로 한다.
4월 18일 고려대학교 시위 소식이 알려지면서 19일 시위를 하기 위해 2차 시위 모의를 하게 된다. 하교 후 구술자를 비롯하여 김귤근, 최영길, 서동룡, 김소현, 김소만, 김용석, 박태성이 최영길의 집에 모여 구체적인 시위 계획을 결정하고 각자 역할을 분담하게 된다. 이들은 숭일고생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각자 설득조, 동원조로 역할을 나누고, 구호를 정하여 플래카드를 제작하기로 했으며(구술자 윤승웅, 김소현 담당), 시위행진 방향과 경찰 저지 시 행동방침, 흩어졌을 시 재집결 장소까지 구체적인 시위 계획을 결정한다. 
4월 19일 이들은 아침 자습시간에 예배실에 모여 전날 계획했던 시위 결정사항을 재점검하고 세부적인 시위준비를 한다. 오후 1시경 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이기 시작하면서 학교 교사들은 학생들을 저지하기 위해 학교의 정문과 후문을 모두 잠그지만, 학생들 50여명이 후문 담을 뛰어 넘어 양림교 쪽으로 먼저 뛰어갔고, 이어서 150여 명이 합류하여 약 200여 명의 숭일고 시위대가 형성되게 된다. 이들은 양림교를 지나 금동 사거리에서 경찰에게 저지를 당하는데, 선두에 있던 이들이 경찰 저지를 뚫고 시내로 진출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선두에 있던 학생들이 경찰의 곤봉에 맞아 팔과 다리에 타박상을 입는데, 구술자도 머리에 상처를 입게 된다. 
숭일고 시위대는 동방극장을 지나 우체국 쪽에서 조대부고 생들과 합류했으며, 금남로로 진입하면서 다른 학교 학생들과 연대 시위를 구성하게 된다. 시위대는 충장로 파출소로 향하여 파출소를 습격하는데, 구술자는 경찰서 내부에 걸려있던 태극기를 밖으로 떼어와 시위대들을 박수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금남로 쪽으로 다시 돌아와 광주경찰서 앞에서 경찰의 저지를 당하면서 시위대는 학동파출소 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구술자는 시위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학교로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남광주 쪽으로 빠지는데, 학동파출소 앞에서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를 목격하게 된다. 학동파출소에서 경찰의 발포에서 의해 강정섭이 사망하고 시위대는 흩어지게 되는데, 구술자도 시위대에서 떨어지면서 밤11시경 귀가하게 된다.



5. 참고자료

四‧一九革命負傷者會 光州‧全羅支部 湖南 四‧一九 三十年史 編纂委員會, 『湖南 四‧一九 三十年史』, 三和文化社, 1995
四‧一九革命負傷者會 光州‧全羅支部, 『湖南 四‧一九革命 資料史』上, 코리아기획인쇄, 2004
홍영유, 『4월혁명통사』제8권, 도서출판 천지창조,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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