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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홍

  • 면담자 : 민족문제연구소(김민철)

구술자소개

  • 구술자 : 임채홍
  • 구술일자 / 장소 : 2010년 10월 19일/서울 서초동 임채홍변호사 사무실
  • 구술시간 : 1시간 10분 2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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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내용 요약

1933년 경북 포항에서 태어난 구술자는 대구사범대 부속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법대 재학 중 1955년 고등고시 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판검사특별임용시험에 합격하면 시보를 거치지 않고 임용되는 제도가 생기게 되어 고등고시에 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판검사특별임용시험에 지원하여 합격, 판사로 재직하였다. 이는 그때가 6‧25전쟁 직후이기 때문에 판검사가 부족하였던 관계로 판검사특별임용시험으로 부족한 인원을 충원시키려고 만든 제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험에 합격하면 곧바로 검사나 판사로 임용을 받을 수 있었다. 구술자는 판사 임용 직후 법무관으로 군대에 입대하여 사단 법무참모로 재직하면서 탈영병 처리나 군부대 내 사고를 담당하였다. 
전역 후인 1960년 청주지법에서 판사로 근무하면서, 이때 27세의 나이로 반민주행위자 충북조사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였다. 그러나 청주지역의 반민주행위자를 조사하는 업무는 쉽지 않았다. 지방의 유지들과 함께 심사를 보던 심사위원들이 지역 정서를 반영하여 조사를 철저히 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술자가 나서서 책임지고 업무를 담당하였는데 젊은 나이에 지역의 유지나 연륜 있는 관계자들을 상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구술자는 4월혁명에 큰 의의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반민주행위자 조사위원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할 의지가 충만했다. 따라서 조사위원으로써 활동을 열심히 하려고 했다. 그러나 조사기간이 실제로 2달 정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사 대상자를 면밀히 조사하기는 상대적으로 어려웠다.
반민주행위자의 조사대상은 주로 사찰계 형사나 반공청년단, 자유당 지구 간부들로 조사위원들이 직접 심문은 하지 않고 제출된 서류를 기초로 하여 조사하였다. 직접 심문을 하는 행위가 없었기 때문에 직책이 있는 경우는 직책에 따라 결론을 내렸지만 정확한 조사는 거의 불가능하였다. 그리고 심사 결과에 따라 공민권 제한이라는 일종의 시민의 권리를 박탈하였는데, 구술자는 공민권 제한이 큰 의미가 없는 가벼운 형벌이므로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반민주행위자 조사위원회 위원 활동을 마치자 바로 서울고등법원 판사로 승진되어 활동을 하다가 이후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를 거쳐 1971년 개인적인 일로 변호사 개업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구술자는 본인이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4월혁명은 민주국가로 발전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된 사건이라는 의견을 표하였다. 그리고 구술자가 참여한 반민주행위자 조사위원의 활동이 미흡했던 점에 대하여 아쉬움도 나타내었다.


5. 참고자료

『奇蹟과 幻想』, 안동일‧홍기범, 서울영신문화사, 1960
『韓國革命裁判史』第1‧2輯, 韓國革命裁判史編纂委員會 編, 韓國革命裁判史編纂委員會, 1962 
『4월혁명자료집 4‧19의 민중사』, 학민사편집실 편, 학민사, 1983
『4월혁명자료집 혁명재판』, 학민사편집실 편, 학민사, 1985
『한국사회변혁운동과 4월혁명』 2, 사월혁명연구소 편, 한길사, 1990
『4‧19혁명』, 김정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3
『이승만과 제1공화국』, 서중석, 역사비평사, 2007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서중석, 웅진, 2008
『4월혁명통사』 10, 홍영유, 도서출판천지창조, 2010
『새로운 4‧19』, 안동일, 도서출판천지창조, 2010
《동아일보》‧《경향신문》‧《조선일보》‧《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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