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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전국빈민연합결성

1987년 이전의 빈민운동은 도시빈민이 갖는 계층적 특수성 때문에 빈민들 스스로에 의해 이뤄지지 않고 가톨릭, 개신교 등 주로 종교계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1987년에 들어와서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도시의 미관상 재개발사업을 서두르는 과정에서 많은 빈민지역 주민들이 자신들의 주거지에서 강제 철거당했다. 이들은 처음에...

1987년 이전의 빈민운동은 도시빈민이 갖는 계층적 특수성 때문에 빈민들 스스로에 의해 이뤄지지 않고 가톨릭, 개신교 등 주로 종교계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1987년에 들어와서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도시의 미관상 재개발사업을 서두르는 과정에서 많은 빈민지역 주민들이 자신들의 주거지에서 강제 철거당했다. 이들은 처음에는 지역별로 자구책을 구하기 위해 각종 대책위원회를 결성했는데, 재개발사업이 시 전역으로 확산되자 철거민대책위원회와 각 지역의 세입자대책위원회들이 1987년 7월 17일 서울시철거민협의회(서철협)를 결성했다. 이것은 도시빈민들이 처음으로 자주적으로 결성한 대중조직이었다. 이어서 같은 해 10월 19일 도시노점상복지회가 전국노점상연합회(전노련)로 명칭을 바꾸어 활동을 시작했다. 1988년에 들어와서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서철협과 전국노점상연합회, 천주교도시빈민회, 기독교빈민협의회 등이 도시빈민공동투쟁위원회를 결성하였고, 이 활동을 통해 전국빈민연합의 결성 기반이 마련되었다. 결성과정에서 지역탁아소연합, 일용건설노동조합추진위원회가 함께 참여했지만, 서철협과 전국노점상연합회, 일용건설노동조합을 제외한 나머지 단체들은 자신들의 조직 성격상 참여를 보류했다.

마침내 1989년 11월 11일 서철협과 전국노점상연합회의 주도하에 전국빈민연합(전빈련. 상임의장 양연수)이 결성되었다. 전빈련의 목표는 주거, 직업, 교육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결성선언문에서, “첫째, 도시빈민이 고립분산적으로 철거문제, 노점상 문제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단일한 대열로 교육 복지 의료의 문제까지 통일적으로 요구하고 관철시켜가는 중심조직으로서의 의의를 지닌다. 둘째, 현재 빈민투쟁의 선봉격인 노점상과 철거민을 중심으로 모든 빈민대중들을 조직하는 구심체이다. 셋째, 도시빈민 정치세력화의 중심체로 발전하는 의의를 지닌다. 따라서 이러한 목적과 의의를 수행하는 대중조직은 전국노점상연합회나 서울철거민협의회 또는 천주교도시빈민회, 기독교빈민협의회 등 6개 단체가 모이는 것이 아니라 그 단체를 중심으로 결집된 대중들이 모이는 것이어야 한다”라고 결성의 의의를 밝혔다.

주요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편, 『한국민주화운동사연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서중석 저,『한국현대사 60년』 김정남 저, 『진실, 광장에 서다』 정동익 저, 『도시빈민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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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소개

‘전국빈민연합’ 조건으로 총 98건, ‘전빈련’ 조건으로 총 11 건, ‘전빈연’ 조건으로 총 11 건이 검색되었다. 전빈련 출범 이전의 주요사료로는 <전빈련 건설과 관련된 정책토론 결과보고서>(등록번호 : 44547), 전빈련 신문 <창간준비호>(등록번호 : 169214), <전빈연 결성에 즈음한 우리의 입장>(등록번호 : 108305)등이 있으며, 창립 직후의 <전빈연 신문 호외>(등록번호 : 120895), <제1차 중앙위원회 회의>(등록번호 : 125077), 정간물 <빈민운동 제3호>(등록번호 : 125028), 평가자료집 <전국빈민연합-90년 상반기 투쟁, 국민연합 평가와 반성>(등록번호 : 125076), <89 인권선언문>(등록번호 : 21899) 등이 소장되어 있다.